← 클릭(동영상 보기) 제33부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 - 인간 영조, 그는 누구인가? "영조 38년(1761)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3정승이 한 달 간격으로 죽은 일이 있었다. 당시 영의정 이천보는 죽기 직전 ""임금님, 화 좀 그만 내십시오. 그렇게 화를 내면 당신에게도 해롭고 나라에도 좋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임금한테 올렸다고 한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렸던 영조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중의 하나다. 마찬가지로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시아버지 영조에 대해 ‘상찰민속’이라 하여 세세하게 살피고 행동이 재빠른 사람이라고 평한다. 또한 밖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불길한 말을 들으면 꼭 양치질을 하고 귀를 씻어내고서야 침전에 들었고, 좋은 일과 나쁜 일,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병적일 정도로 나누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세자를 죽이려고 거둥할 때 혜경궁은 영조가 경화문으로 들어왔다는 말만 듣고도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아차렸을 정도였다. 영조는 출생과 죽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각심(혹은 무수리) 출신으로 궁녀의 시중을 드는 몸종이었다. 조선의 역대 임금을 살펴보면 궁녀 출신의 어머니를 둔 왕들은 많다. 하지만 영조의 어머니는 궁녀의 몸종 출신! 어느 왕자보다도 천한 신분이라는 꼬리표는 그를 평생 괴롭혔다. 또한 영조가 태어났을 때 세자의 자리는 이미 이복형(경종)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조(연잉군)는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일개 왕자일 뿐이었다. 임금이 될 수 없는 왕자에게는 늘 죽음이 따라다니는 법. 사도세자의 여러 아들만 봐도 임금이 된 정조외에는 모두 역모 혐의로 죽임을 당했다. 출신 콤플렉스 외에도 왕위에 오르기까지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형성된 불안한 심리 상태 또한 영조의 날카롭고 편집증적인 성향에 일조 했을 것이라고 정병설 교수는 말한다. 조선 최고의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영조! 하지만, 왕이 될 수 없는 왕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했던 영조에 대한 이야기가 정병설 교수의 권력과 인간 3 <인간 영조, 그는 누구인가?> 편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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