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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부 홍순민의 궁궐과 사람들 - 궁녀 인생, 그 두 번째 이야기
"개방적인 현대 사회에서도 화젯거리 중 하나인 동성애.
하물며 성리학이 기본 이념이던 조선시대에
동성애 사건이 터졌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세종 때, 궁궐의 여종이었던 궁녀 ‘소쌍’과,
문종이 세자시절 맞은 부인이면서 세종의 며느리였던
세자빈 봉씨 사이에 동성애 스캔들이 터졌다.
소쌍에게 마음을 두고 여러 차례 잠자리를 함께 한 봉씨는
잠시라도 소쌍이 자신을 떠나면 성을 낼 정도였다.
시아버지인 세종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마음을 돌리지 않았던 세자빈 봉씨는 결국 폐위되었고,
궁녀 소쌍은 끝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전, 서울 은평구 여우골에 한 상궁의 묘비가 발견됐다.
묘비의 주인은 13살의 어린 나이에 입궁해
인종에서 숙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4명의 임금을 모신 임상궁이다.
조선시대 궁녀의 생애가 자세히 기록된 묘비는 이것이 처음!
비문에 의하면,
좀처럼 실수하는 법이 없던 임상궁은 왕실 가족들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나이가 들어 궐 밖으로 나와서도 시집간 공주의 집에서
이모라고 불리며 집안일을 주재했다고 한다.
그녀가 죽자, 숙종은 목재와 함께 베, 비단을 하사했으며
죽은 뒤 4년 후에는 묘비까지 세워줬다.
조선시대에 왕실 종친과 궁녀 사이의 간통 사건은 종종 있었던 일이다.
발각되었을 경우, 종친 남성은 근신 정도의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궁녀는 죽임을 당해야 했다.
또한 종친과 관료들 간의 역적모의 등에는
늘 그렇듯 심부름꾼인 궁녀가 개입되기 마련.
그러다 보니, 제일 먼저 붙들려와 심문을 받는 자 역시 대부분 궁녀였다.
여성으로서 외로웠고 전문일꾼이었으나 존중받지 못했던 여인,
궁녀. 궁궐 한 구석에 감춰져 있던 그녀들의 실제 삶은 과연 어땠을까?
구중궁궐 깊고 깊은 속에 감춰져 있던 궁녀들의 스토리가
홍순민 교수의 궁궐과 사람들 <궁녀 인생, 그 두 번째 이야기>편에서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