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낙동강둔치의 음악 분수대
    蕭何소하와 曹參조참은 한 고조 劉邦유방과 동향인 패현의 하급 관리 출신으로 유방이 거병한 초기부터 따라 나선 최측근이었다 서로 미천 할 때 둘도 없이 친했던 두 사람은 초한전쟁 승리 뒤 논공행상 때문에 사이가 벌어졌다. 한 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 천하를 놓고 승패를 다투고 있을 때에 한번도 전장에 나가지 않고 후방 관중지역을 지키며 모든 군수물자를 대고 군사를 공급하였던 소하(蕭何)는 승상이 되고 몸에 70여 군데의 상처가 나도록 전장을 누비면서 한(漢)나라의 통일대업에 이바지한 曹參조참은 평양후(平陽侯)로 책봉되어 산동지방 제후국의 상국이 되었다. 한고조 유방이 죽고 그의 아들인 혜제가 등극하여 2년이되는 해 였는데 소하가 병이 들었다. 혜제는 친히 그에게 가서 물었다. '그대가 100세가 된 뒤에 누가 그대를 대신할 수 있겠소?' 100세가 된 뒤라면 죽는다는 말인데 죽는다는 이말을 입에 올리기 싫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며, 소하가 죽은 다음에 누구를 재상으로 임명해야 하느냐를 물은 것이다. 소하가 혜제에게 대답하였다. '신하된 사람이 아는 것과 군주된 사람이 아는 것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군신간에는 시각(視角)차이가 있으니 신하가 군주에게 천거하기가 곤란하다는 대답이었다. 그러자 황제가 물었다. '조참(曹參)은 어떠하오?' 소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황제께서 그를 찾아냈으니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소하도 그의 후임으로 조참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에 소하는 죽었다. 惠帝 2년 [BC193년] 소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참은 상경을 서둘렀다. 『내 곧 승상이 될것 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사령장을 지닌 황제의 사자가 도착했다. 두사람은 천하가 다 알만큼 사이가 나빴지만 이것은 사사로운 일이고 소하가 죽으면서 후임으로 조참을 천거 한 것은 국가의 공적인 일이라 조참은 소하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어 한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지만 조참도 3년후 죽는다 공과사를 구별 할 줄 아는 소하와 조참의 관계를 후세사람들은 소하와 조참의 성을 따서 소조의 사귐(蕭曹之政 소조지정)이라 멋있게 부른다. (출처:인터넷에서 발췌 편집) 마포종점/최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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