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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부 이익주의 고려 인물 열전 - 충선왕. 자주국 고려를 꿈꾸다

"1259년(원종 46), 
강화 협정으로 28년간 몽골과의 긴 전쟁을 끝낸 고려. 
고려는 패전국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원의 간섭이 고려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원의 결정에 따라 충렬왕과 충선왕, 
충숙왕과 충혜왕 부자가 번갈아 왕위에 오르는 일이 생기고 
고려 정치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려와 원은 강화 직후 고려왕실을 지속시키고 
고려의 풍속을 고치지 않도록 하는 ‘세조구제’와 ‘조공-책봉 관계’를 맺음으로써, 
고려라는 나라의 독립성은 인정된다. 
바로 이 시기에 왕이 된 충렬왕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도 
고려의 자주권을 지키려 애썼고 나라 안의 정치에서도 
권세가의 탈세와 전민탈점(토지와 사람의 불법 점유)을 금지하는 등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당시 고려사회를 개혁하는 혁신정치를 편다. 
하지만 원과의 오해로 8개월 만에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고 
그의 개혁을 향한 정치는 잠시 멈추게 된다. 
아버지 충렬왕이 죽자 다시 왕위에 오른 충선. 
하지만 그는 원에 살면서 교지를 통해 나라를 통치한다. 
충선왕은 다시 혁신정치를 펴 나가지만, 
나라에 국왕이 없는 상황에서 왕의 권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왕의 측근 세력의 폐해가 심해지자 신하들은 충선왕에게 여러 차례 귀국을 요청하지만, 
자신의 권력과 나라를 보존하는 방법은 그대로 원에 머물러 
몽골 황실 자손이자 부마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충선왕. 
마침내 1313년(충선왕 5) 아들을 고려 국왕으로 세우고,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원의 부마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는데... 
고려와 원을 오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충선왕! 
원 황실의 자손이며, 부마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주적인 나라 고려를 만들려했던 충선왕에 대한 이야기가 
이익주의 고려인물열전 3 <충선왕, 자주국 고려를 꿈꾸다> 편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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