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 - 단양8경중 제5경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7호(2008.09.09지정)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번지
테마 : 자연유산, 명승, 자연경관, 지형지질경관
사인암(舍人巖)
고려후기 경사와 역학에 능했던 역동 우탁 선생이
정4품 벼슬인 사인(舍人) 재직 시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였던 임재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다고 전하며,
암벽에는 우탁선생의 글이 남아 전한다.
사인암 암벽
역동(易東) 우탁(禹倬)선생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 호는 단암(丹巖)·백운당(白雲堂).
단양우씨(丹陽禹氏)의 시조 우현(禹玄)의 7세손이고,
아버지는 우천규(禹天珪)이다.
고려 원종 4년(1263년)에 단산현 품달리 신원(현재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출생하여 24살 때인 1290년(충렬왕 16)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되었으며
재임 중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와 통간하자
백의(白衣) 차림에 도끼를 들고 거적자리를 짊어진 채
대궐로 들어가 극간을 하였다.(지부상소)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예안에 은거하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정이(程頤)가 주석한 『역경(易經)』의 「정전(程傳)」이
처음 들어왔을 때 아는 이가 없었는데 홀로 연구하기를
한달여만에 완전 해득하여 강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열전(列傳)」에 따르면 역학(易學)에 더욱 조예가 깊어
복서(卜筮)가 맞지 않음이 없다고 기록될 만큼 아주 뛰어난 역학자였다.
때문에 주역이 중국에서 동쪽으로 왔다는 뜻으로
후세에 ‘역동선생(易東先生)’으로 불렸다.
퇴계선생은 역동서원을 창건하고
충의대절은 천지를 움직이고 경학의 밝음이나 진퇴의 정당함은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나니 후학의 사범으로 백세의 묘향을
받을분이라며 [역동서원기]에 적어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90A294D50B5B3430C)
좌측 청련암과 우측 사인암 절벽 사이에
작은 건물은 청련암의 삼성각이다.
삼성각과 사인암
![](https://t1.daumcdn.net/cfile/blog/146E514D50B5B3453A)
![](https://t1.daumcdn.net/cfile/blog/0202E54D50B5B34417)
![](https://t1.daumcdn.net/cfile/blog/03192D4F50B6E4DC15)
![](https://t1.daumcdn.net/cfile/blog/15728A4D50B5B34633)
사진으로 보면 암벽에 조성한 마애불같이 보이나
절벽에 암각된것이 아니고
대웅전 불사를 하면서 새로 조성한 불상이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036D5C4D50B5B3483C)
「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은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병풍처럼
넓은 바위가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추사 김정희선생이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사인암 계곡
![](https://t1.daumcdn.net/cfile/blog/1953764E50B6CACF10)
비단으로 무뉘를 짠 듯
독특한 모양과 색갈
역동선생의 충의대절과
도끼를 들고 상소를 올리는
선생의 기개가 하늘높이 치솟은
기암절벽에 스며 있는듯......
사진 : 2012. 11. 20
어쩌란 말인가요 /윤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