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⑦‘진경문화’ 병자호란의 아픔 보듬어 ♣
18세기 이후 조선의 문화와 예술의 분야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 들어가면 중국에서 유행한 남종 문인화를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 풍속에 맞추어 토착화하려는 화풍이 일어났으니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그것이다.
청나라에 패배한 치욕을 문화적으로 회복하고,
그 문화의 중심은 명에서 조선으로 이어졌다는 조선중화사상이 진경문화의 유행에 큰 몫을 했다.
그림에서 진경문화의 주역은 정선이었다.
양반출신이었던 정선은 자신이 살았던 인왕산 등
서울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금강산의 모습 등을 독특한 필치로 그려 넣었다.
정선의 뒤를 이어 산수화와 풍속화의 새 경지를 열어 놓은 화가는
화원(畵員) 출신인 김홍도와 신윤복이다.
김홍도는 정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궁중 화가의 중심인물이 되어 각종 궁중 풍속화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김홍도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풍속화에 담았다.
대장간, 씨름, 집짓기, 추수 등 그의 풍속화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윤복은 부녀자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아 진경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신병주의 '역사에서 길을 찾다' 2009.12.29>
자시삼경 - 김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