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탑리 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
국보 제77호(1962.12.20 지정)
경북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탑리)
![](https://t1.daumcdn.net/cfile/blog/1950BC415052B2072F)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으로 높이는 9.65m 이다.
목탑과 전탑 형식을 혼합하면서 전체적으로 전탑적인 외관을 갖췄고
몸돌(옥신석)의 기둥돌들도 모두 별개의 돌로
배흘림까지 다듬었을 정도로 목탑에서 발전한
백제탑(백제의 미륵사지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지붕돌은 층마다 처마와 지붕이 모두 층단을 이루고 있어
신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의 지붕과 같은 전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까지 남아 있다.
기단부
탑을 조성하기 위해 흙을 돋우어 성토(盛土)하고
곳곳에 보호석을 배치하여 토축의 무너짐을 방지하였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그리고 벽판석을 모두 별개의 돌로 구성한 단층기단이다.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금성산이다.
감실(龕室)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몸돌(옥신석)의 기둥돌들도 모두 별개의 돌로
기둥돌의 안쏠림과 배흘림까지 다듬었을 정도로
목조건축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문비(문틀)와 하인방(문지방)등 문을 달았던 흔적도 남아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96D55415052B20818)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1층은 윗면이 6단, 아랫면이 3단이고
2층이상은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옥개석(지붕돌) 처마는 수평을 이루나 추녀 끝은 위쪽이 살짝 들렸다는데...
![](https://t1.daumcdn.net/cfile/blog/1352CE415052B2092C)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622년,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
초층 탑신의 뒷면에 일제강점기때 탑을 보수한 기록을 새겨 놓았는데.
내용은 大正十五年六月 石塔保存會'라고 새겨져 있고
일본과 한국인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1926년(대정15년)에 일제가 보수하였다는 뜻이다.
의성의 명산 금성산
산의 형상이 마치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 하다.
휴화산인 까닭에 옛적에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 시루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화산 폭발로 인해 금성산 정상에는
3300여 ㎡(1000여 평) 규모의 평지가 남아있는데,
명당 중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곳에 조상 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되지만
주변 지역은 3년 동안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산이다.
사진 : 201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