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興淸亡淸] 이야기

 
흥청망청의 어원은 조선시대의 연산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산군은 조선팔도에 채홍사(採紅使),채청사(採靑使)를 파견하여 
각지방에서 예쁜처녀와 좋은 말을 징발 하였으며 
각 고을에서 미녀와 기생들을 관리하게 했다
또 원각사를 폐지하여 기생양성소로 개편하고,
오늘날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도 학생들을 내쫓고 
유흥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에는 기생을 운평(運平)이라고 불렀는데 
이 기생들이 뽑혀서 대궐로 들어오면 흥청(興靑)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젊음을 돋운다해서 붙인 이름이 흥청(興淸)이다 
이러한 흥청중에서 연산군의 눈에띄어서 잠자리를 함께하게되면 
천과흥청(天科興靑)이라 불렀고 
그렇지 못한 흥청은 지과(地科)흥청이라고 불렀는데 
모두 합해 2,000명이나 되었다.
전국을 이처럼 접대부 양성소 및 대기소로 만들어 놓고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서 정사는아랑곳 하지않고 
발가벗은 흥청들과 놀아났으며 특히 말타기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스스로가 말이되어서 흥청들을 태우기도하고 
자신이 흥청의 등에타기도 하면서 즐겼다 한다.
봄이면 벼슬아치나 선비들로 하여금 흥청들을 태운 가마를 메게하여 
뚝섬에 행차해 수백 마리의 암말과 숫말들의 교합을 지켜보다가 
곁에 늘어선 흥청들을 희롱하기도 하고 
발가벗겨 놓고 음주가무는 물론 콩알 줍기(?) 게임까지 즐겼다 한다
또 엄청난 수의 흥청들을 관리하느라 창덕궁 안에 7원 3각을 지었으며, 
흥청들이 쓸 그릇이 모자란다고 상점을 강탈하고 
자신이 총애한 흥청에게 막대한 재물을 하사했다. 
궁궐에 연회가 열리는 날이면 장녹수(숙의 장씨,종2품)는 
연산군이 좋아하는 타입의 부인들 신상명세서를 미리 확보해 놓고 
머리 모양이 잘못되었다든지, 
옷매무새를 고쳐야 한다면서 궁궐 안의 외진 별궁으로 유인하여
(좌의정 박승질의 처, 봉사 변성의 처, 총곡수의 처, 참의 권인손의 처, 
 승지 윤순의 처, 생원 권필의 처, 중추 홍백경의 처…. 
 특히 남천군 이쟁의 부인과 며느리 까지) 연산군이 겁탈 하게끔 했다 
민가에 유부녀도 반반하다고 소문만 나면 
채홍사는 남편에게 쌀 몇섬에 비단 몇 필 주고 
궁중의 흥청으로 불러 들여 그 짓을 하였고
월산대군의 처 박씨(큰엄마)마저 범하는 천륜을 거스리고야 말았다
그일로 월산대군의 처 박씨는 자결하고 박씨의 동생 박원종은 
누이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었는데....
그결과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은 왕좌에서 떨려났고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0. 중종반정 : 1506년 박원종,성희안 등이 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 중종   : 조선 11대 왕, 성종의 둘째아들 진성대군
   - 정국공신 : 중정반정의 공신들 박원종,성희안,유순정,유자광 등 117명
이와같이 연산군이 흥청들과 놀아나다 망했다고 하는데서 
흥청은 곳 망청이다라는 뜻으로 
백성들사이에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은 그말의 뜻이 조금 변하여서 많은 재산이나 권세가 있어서 
돈이나 금품따위를 함부러 마구쓰는행위를 일컷는말이 되었다
아무리 많은 재물도 흥청망청하면 곧 망한다는것은 불멸의 진리인것이다 
있는 재물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쓰다 패가 망신하는 것이니
흥청(興淸)을 돋구다 망청(亡淸)이 된다는 
불멸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 인터넷에서 발췌>
[참고] 야사(野史)와 정사(正史)는 다를수 있습니다.

노래 : 장녹수/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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