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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여! 장춘다방을 아시는지?

    북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하고 황하다방에서 커피한잔 하던 그 시절 말고
    33다방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절

    낡아 삐걱 거릴 것만 같았던 그런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조금은 떨릴 것 같은 마음으로 다방 문을 밀고 들어간다.
    벽에는 거울이 있다.
    테이블에는 동그란 번호판이 붙혀져 있다.
    다방안쪽에는 한두 발 높은 층을 만들어 공간을 넓게 터놓았다
    커피냄새는 어디로 갔는지 담배 연기만 자욱하다.

    중앙로에서 대구 중앙공원(현제는 경상감영공원)입구로
    들어가기 전 우측건물 2층에 있었던 다방, 장춘다방

    소쩍새 우는 밤이면
    슬픈 그리움이 물 묻은 수채화 처럼 번져 오던
    근계시하(槿啓時下) 초하지절(初夏之節).

    체크무뉘 남방에
    양 호주머니가 앞에 달린
    (그래서 양손을 호주머니 양쪽에 깊숙이 꼽고 다니던
    그때는 그게 유행 이였지)
    체크무뉘 바지를 입고 시내로 가는 27번 버스를 탔는데
    아! 글쎄…….

    우연인지? 우연이겠지
    그 버스 안에서 순현이를 만났다. 조순현이를
    반갑기는 반가운데
    아는 체를 해야 되는데
    머뭇머뭇 어정어정 어정쩡정

    말을 올려야 하는지 놓아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영 어설픈 게
    남자가 이렇게 숫기가 없을 줄이야……. 바부 드응신
    분명히 우리는 초등학교 동기인데

    지금이라면 순현아! 조순현
    커피 한잔 할래 친구야! 라고 한 번에 부를 자신이 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씩씩하지 못했는지
    악수는 크녕 얼굴이라도 한번 쳐다봤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둘이서 쭈뼛쭈뼛 똑같은 버스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탔고
    또 시내정류장에서도 똑같이 내렸다

    정말로 우연한 동행인가?
    가다가 쇼윈도 앞에서 구경도 하면서
    무어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었는데…….
    내는 앞에서 걷고,순현이는 뒤에서 걷고
    그러니까 순서대로 표현 하자면 그런 것이고
    따로따로 볼일이 있어서 동행 했다면 아닌 것이고...

    그러고 나서는
    잘 가라는 말도 없이 인사도 없이
    낡아 삐걱 거릴 것만 같았던 장춘다방 2층 계단으로 도망치듯 올라가
    다방 문을 밀고 들어갔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가슴 한곳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남아
    오아시스인양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 순현이를 내가 많이 좋아 했나보다 그지!
    아니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커피 한잔 할래")을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가?

    그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장춘다방에서
    무작정 만나자는 약속만 믿고 나왔었는데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생각지도 못한 순현이를 그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는 게.....................................,
    특별한 기억도 가슴 찡한 추억도 없었지만
    그래도 참 기분이 묘했다,

    입구가 잘 보이는 장춘다방 안쪽 조금 높은 자리에서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약속했던 여자가 어떻게 찾아오나 기다리며
    무료하게 오래 앉아 담배만 피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김양아~
    (십 세 번에 오백 원~ -.-ㆀ)" ☜ 마우스로 긁어 보세요.

    손님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담이 카운터에 있던 김양이라는
    다방레지에게 내 뱉는 폭발적인 어휘 구사에

    다방 안에 있던 꽤 많은 손님들, 그리고 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연신 김양 한번 그리고 마담 한번, 마담한번 김양한번을 번갈아 쳐다보며
    뭔 세 번!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세 번인데 오백 원이라니?
    한 번에 삼천 원?이라면 이해가 되겠는데?

    이내 정리가 되는 듯
    다방 안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13번 테이블에 앉아있던 젊은 손님이 멋적은듯
    카운터로 가 커피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터질것 같은 상상의 나래를 잔머리로 굴리다가
    엉뚱한 즐거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날…….
    .
    .
    .
    아주 기분이 묘 했던 그날
    순현이를 마지막 보았던 그날
    바람만 휑하니 모퉁이에서 울고 지나가던 그날.
    난 그날 진짜 바람 맞았고
    우 씨! 커피값만 축내고 시간만 죽였다.
    그러고 나서…….
    .
    .
    .
    (제 초딩홈피에 올린글을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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