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춘당 송준길이 혼인할 때의 일화 ♣
경상도의 유명한 학자 우복(愚伏) 정 경세(鄭經世)가
사위감을 고르려고 사계 김장생선생댁을 찾아왔다.
우복(愚伏)은 사계에게 사위감 하나를 골라 달라고 청하니
사계가 하는 말이 서당에 가면 세 청년이 글을 읽고 있을 터이니
가서 골라보라고 권하였다.
우복이 서당으로 불시에 찾아가서 방문을 열으니 세 청년이 다같이 누워있었던 때였다.
불시에 손님이 문을 열자 누워있던 세 청년 가운데
한 청년은 얼른 일어나서 나와 인사를 하며 손님을 맞이하여 드리고,
한 청년은 누운 채 그대로 있었으며,
한 청년은 다만 일어나 앉아서 있을 따름이었다.
세 청년의 행동이 다 각각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돌아온 우복은 사계에게 누워 있는 청년은 누구이며,
일어나 나와서 인사를 한 청년은 누구이고,
일어나 앉아 있던 청년은 누구냐고 물으니,
누워 있던 청년은 우암 송시열이고,
인사를 나온 청년은 초려 이유태이며,
앉아 있던 선비는 동춘당 송준길이라고 하니,
우복은 중도를 지켜 처세를 할 줄 아는 송준길을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정경세는 사위를 본 후 언젠가는 자기 사위인 송준길이 정승을 하리라고 믿고
요도 두겹으로 깔아주며 반찬도 정승을 대접하는 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자기의 벼슬은 판서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자기보다 벼슬이 높아질
사위감 송준길에 대해서 항상 자기보다 우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부인과 함께 짜고 우암, 동춘, 초려 세 청년 중
누가 정승자격이 있는가 시험해 보고자 약속한 후
개울에 나가서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
세 청년의 의복을 가지고 도망해 오라고 하였다.
옷을 가지고 내빼는 청년을 보자
화가 벌컥 난 우암 송시열은 발가벗은 채 알몸으로
동네 안에 쫓아 들어오며 내옷 내놓으라고 고함을 치니
동네 아낙네들이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랠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옷을 가지고 도망해 오던 하인은 우암의 옷만은 돌려주었는데
초려 이유태는 모래를 파고 들어가 몸을 파묻고 옷을 갖다줄 때를 기다렸으며
동춘은 의젓하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본 우복정경세는 옷을 돌려주면서 정승재목은 뱃심좋은 우암 송시열이 틀림없으나
자기의 위치를 지킬 줄 아는 선비는 사위 송준길이라고 칭찬하였다.
과연 살아서 생전에 정승을 한 분은 우암 송시열이요,
동춘은 생존에 이조판서 밖에 못하였으며 사후에 영의정을 증직(贈職)받았으니
중도를 지킬 줄 아는 선비다운 모습을 선생에게서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출처:인터넷에서 발췌>
[참고] 야사(野史)와 정사(正史)는 다를수 있습니다.
음악 : 울어라 열풍아-조아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