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석탑리 방단형적석탑(安東 石塔里 方壇形 積石塔 )
문화재자료 제343호(1997년 12월 19일 지정)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861-1
경상북도 안동시 석탑사에 있는 고려시대나 조선초기의 석탑으로 높이는 4.5m.
석탑의 형태는 평면이 정사각형이며,
위로 올라가면서 계단식으로 축소되는 5층의 다층 탑형을 취하고 있다.
석재는 주변에서 채취 가능한 편마암의 크고 작은 파편을 사용하였다.
각 층마다 비교적 크고 반듯한 판돌 4장으로 면을 이루게 한 뒤,
그 안을 막돌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석탑의 축조 시기는 고려나 조선 전기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최상부 또한 최근에 보수한 것인지 원래의 형태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고목이 있는 석탑의 풍경(사진 : 2015.10.19)
-. 잃어버린 공양으로 세운 석탑
(안동 석탑리 방단형적석탑의 설화 2개 중 하나)
안동군 서후면 자품리 천지부락 뒤에 우뚝 솟은 학가산은 882m를 자랑하는
안동 제일의 雄蜂(웅봉)으로서 안동, 예천, 영주 3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에는 멀리 신라시대의 능인도사가 10여년간 수도한 능인굴이 있는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줄지 않는 맑은 석간수가 요즘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능인굴에서 200여리 떨어진 영주 봉황산의 부석사는
삼천 승려들이 수도를 하던 큰 사찰이었다. 삼천 명이나 되는
스님들의 식사 공양(절에서는 식사를 공양이라 함)은 보살들의 큰 일과였다.
아침저녁 밥이며 나물이며 수저들을 챙겨
한 명의 스님도 빠짐없이 공양을 올려야 되는 보살들은 늘 신경을 쓰며 분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공양때 였다. 스님 한 분이 밥 한 그릇이 모자란다며 밥을 청했다.
그러나 공양을 올린 보살은 분명 맞게 올렸으므로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헌데 그 날 아침에 없어진 밥 한 그릇이 저녁때 또 감쪽같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없어지기 시작한 밥 한 그릇은 이튿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없어 졌다.
스님의 공양들이 차례로 한 그릇씩 계속 없어지자
스님들은 서로 시비가 붙게 되었고 드디어는 싸움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스님들은 부석사에서 가장 지고하신 고승을 찾아가 그 연유를 밝히고 대책을 물었다.
고승은
"허허,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공양이 한 그릇씩 없어진다는 것은 누군가 먹기 때문이 아닌가?
허나 공양 도둑은 부석사 안에는 없네.
조석으로 부석사 공양을 한 그릇씩 먹는 자는
남쪽으로 200리 떨어진 학가산의 능인도사라네."
이 말을 들은 삼천 스님들은 공양 한 그릇씩 없어진 것에 대해
분풀이 할 것을 결의하여 돌을 하나씩 들고 능인도사를 찾아갔다.
학가산의 북쪽 산등성이 까지 오자 능인도사는 신통술을 부려
삼 천 승려들 앞에 떡 나타나더니 벙글벙글 웃어대며
"도둑은 한 가지 죄, 잃은 놈은 열 가지 죄라 했는데
오히려 잃은 놈들이 나를 벌하러 왔느냐." 하며 놀려대자,
스님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저마다 흥분하여 돌을 내려치려 하니
능인도사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준엄한 목소리로
"살생을 금하고 자비를 추구하는 사문들로서 이것이 왠 추태인가,
오히려 자기의 공양을 남에게 주어야 하거늘
자기의 공양을 빼앗겼다고 속세의 무리들처럼 살생을 하려는가?"
엄한 꾸중에 부석사 3천 승려들은 크게 깨달아
능인도사를 죽이려고 들고 온 돌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 탑은 학가산 북쪽 계곡을 가로막고 서 있으며 한 쪽 변이 16m,
높이가 5m나 되는 커다란 석탑(피라미드형)이 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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