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학(1882~1923.12.20) :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에서 출생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대한독립군결사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22년 1월 5일, 경원군 신건동에 있는 신건원 주재소(일제 경찰지소)를 습격
1923년 일제 주구의 밀고로 김학섭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3년 12월 2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당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38년 2월 오케이 레코드사에서 발매한 ‘눈물저즌 豆滿江’
국민 애창가요 1순위로 꼽히는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
가사만 보면 애절한 남녀의 사랑 노래처럼 들리지만,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민족의 한과
북변 독립군들의 애환이 담긴 역사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930년대 중엽 중국 동북지방을 순회공연 중이던
극단 `예원좌'의 작곡가 이시우씨가 지린(吉林)성 도문(圖們)시의 한 여관에 머물 때 만든 작품이다.
1935년 어느날 여관 뒷마당에 서 있는 단풍나무 두 그루를 보며 고향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여관집 주인이 그 나무는 자신이 두만강을 건너올 때 고향에서 떠가지고 와 1919년에 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이씨가 `추억'이라는 주제로 곡을 구상하며 잠을 못 이루던 그날 밤
옆 방에서 비통하고 처절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사연을 알아보니 그 여인의 남편과 여관집 주인은 친구 사이인데
독립군 활동을 하던 그 여인의 남편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총살 당했다.
여인은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이곳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국에 몸을 던진 남편(독립투사 문창학)의 생일 맞아
남편을 그리워하며 손수 술을 올리던 그날밤
여인 김증손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흐느끼며 오열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두만강 가에 나간 이씨의 눈에는
두만강의 물결이 나라 잃고 헤매는 우리 민족의 피눈물처럼 보였고
그 곳에서 만난 문학 청년 한명천에게 사연을 이야기 해주자
그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썼고 이씨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창작된 노래는 극단 예원좌의 장월성이라는 소녀배우를 시켜
공연 막간에 부르도록 했고 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씨는
김용호 시인에게 부탁해 노래가사를 다듬고 곡을 완성해
고(故) 김정구씨의 노래로 OK레코드사를 통해 취입하게 됐다. 레코드에는 작사자가 김용호로 올라 있다.
<천리마>란 북한의 잡지는 이 노래가 한명천 원작, 김용호 개작, 이시우 작곡이 정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명천은 1940년대 후반 북한정권 초기에 활동한 시인으로
그의 대표작 `북간도'는 북한에서 아직도 조기천의 `백두산'과 함께 문학사에서 `2대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