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남선면 마늘밭(2015.06.14)
 ■ 오빠 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1925년 11월, 열두 살 소녀 최순애가 소파 방정환이 창간한 《어린이》란 잡지에 
<오빠 생각>이란 동시로 입상한 후, 
그 다음 해 1926년 4월에는 이원수가 <고향의 봄>으로 입상합니다. 
얼마 후 '홍난파'가 고향의 봄을 노래로 만들었고, 
오빠생각은 5년 후에 박태준이 작곡을 하게 됩니다. 
딸 다섯에 아들만 하나뿐인 우리 집
오빠(최영주)는 순애 보다 9살이나 많았습니다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 갔다가 
관동대지진 직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태를 피해 가까스로 돌아왔습니다. 
수원에서 화성소년회(華城少年會)를 조직하면서부터 소년 운동에 투신하였고
일제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늘 감시 당하였습니다.
오빠는 1927년1월 서울 개벽사(언론,잡지사)에 입사 하면서 방정환 선생 밑에서 
소년운동과 계몽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오질 않았습니다. 
오빠가 집에 올 때면 늘 선물을 사 왔는데 한번은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다 줄 게.”라고 말하고는 서울로 떠났습니다.
과수원 집 딸인 순애는 과수원 밭둑에서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오빠를 그리워 하고  오빠를 기다리며 쓴 동시가 바로 이 ‘오빠 생각’이라고 합니다. 

최영주(崔泳柱, 1906년 ~ 1945년 1월 12일)는 
수원 출신으로 부일 반민족행위를 한 아동문학가 겸 언론인이다. 
본명은 최신복(崔信福)이다.
1940년 5월 1일에 마해송(馬海松)·최영주(崔泳柱)가 〈소파전집〉을 펴냈고
1941년 1월부터 1941년 8월까지 월간 잡지 "신시대" 주간으로 활동하는 동안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과 황민화 정책,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고 지원병 제도를 선전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이러한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언론/출판 부문에 포함되었다.
1945년 1월 12일 폐결핵으로 사망했으며, 작품집으로 "호드기" 등이 있다.
<위키백과>
오빠생각 - 이선희

오빠생각이란 동시를 읽은 마산 소년 이원수는 감동하여 
수원 소녀 최순애에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최순애와 이원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편지와 문학 글로 10여년의 인연을 맺어 오면서 
서로의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까지 약속하게 됩니다.
최순애와 이원수는  
드디어 수원역에서 첫 만남을 가지기로 약속했지만, 
그날 그 자리에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원수가 민족의식에 눈을 뜨며 참가한 반일독서회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일 년 간 감옥에 투옥중이었습니다.
과수원집의 유복한 최순애에 비해서 
너무도 가난한 이원수의 집안 형편 때문에 반대가 심했지만  
최순애는 끝까지 이원수가 풀려 나길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이원수가 풀려 나고 
두사람은 1936년6월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오빠 최영주가 두사람을 맺어 주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비록 이원수가 1940년대부터 갑자기 친일로 변절했고, 황국신민으로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자는 글을 쓰는 등의 행위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고향의 봄>, <겨울나무>, <엄마 없는 날>, <꼬마 옥이> 등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문학에서는 큰 업적을 남긴 것은 맞는 일입니다. 
<위키백과>
[출처] 인터넷

안동 남선면 마늘밭(201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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