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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2월, 국호를 청(淸)이라 고친 후금의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온다. 이들은 압록강을 건넌지 14일 만에 조선의 도성에 다다랐고 인조는 이들에게 쫓겨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대항했지만 1637년 음력 1월 30일, 결국 조선은 삼전도(송파구 삼전동 부근)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전쟁의 후유증은 너무나 크고 비참했다. 국체의 상징인 왕 인조가 친히 오랑캐 황제 앞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즉,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을 치러야 했으며 또한 조선은 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매년 공물을 바치며 세자와 왕자를 청으로 잡아간다는 요구의 정축화약을 맺는다. 이때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도 인질로 잡혀가는 굴욕을 겪게 된다. 청나라에 머물던 소현세자는, 조선에서 듣던 것과 달리 발달된 과학과 문화, 군사력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고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룬 청나라야말로 조선이 지향해야 할 국가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조선에게는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던 나라 청. 청나라에 대한 소현세자의 이 같은 심경 변화는 삼전도의 치욕을 잊은 친청(親淸)주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1645년. 마침내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인조에게 세자는 타국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귀한 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반청(反淸)노선에 반기를 든 반역자였다. 이런 인조와 소현세자 사이의 부자 간 갈등은 세자가 가지고 온 천주교 서적과 서양 과학서적을 문제 삼으며 최고조에 이르렀고... 귀국한 지 70여일이 지난 1645년 4월. 소현세자는 부강한 조선을 세우고자 했던 꿈을 펴보지도 못 한 채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새로운 문명을 보고 시대를 열망했지만 새로운 조선을 꿈꾸어서는 안 되었던 시대. 바로 그 시대를 살아서 비운의 세자로 남아야 했던 소현의 이야기가 신병주 교수의 조선을 뒤흔든 사건들 7 <비운의 세자 소현> 편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제29부 신병주의 조선을 뒤흔든 사건들 - 소현세자, 의문의 죽음을 당하다
2013. 4. 24.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