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촌(성곡동)의 까치고개

까치고개 넘어 왕의나라 세트장


통나무집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통나무집은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에 살던 한무진(韓武鎭)씨의 집인데, 
   1977년에 이곳으로 이건 하였습니다.
   이 집은 본채와 헛간채로 이루어지며,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배치는 긴 마당의 뒤편에 본채가 자리 잡았고 
   헛간채는 본채의 좌측에 자리 잡았습니다.
   본채는 방, 방, 방, 부엌, 광 등의 순으로 배열되어있고. 
   헛간채는 2칸의 건물로 한 칸은 외양간이고, 다른 한 칸은 헛간입니다.
   통나무집을 귀틀집 또는 누목식(累木式) 주거라고 하며 산림지역이 많은 
   중부 이북의 산간지역에 많이 분포합니다.
   현재는 울릉도,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 강원도 및 경북의 산간지역에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건축하는 방법은 통나무를 "井" 자 모양으로 귀를 맞추어 교대로 쌓아 올린뒤 
   그 사이를 진흙으로 막았습니다... 
   귀틀집 : 큰 통나무를 정(井)자 모양으로 층층에 맞추어 얹고 
            그 틈을 흙으로 메워 지은 집.
   칸 : 기둥과 기둥사이를 한 칸이라 함
통나무집에서 본 까지구멍집,이춘백초가,박명실초가,정효각,돌담집,이원모와가 까치구멍집
지붕 용마루의 양쪽 합각에 둥근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이 까치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명칭은 학지들이 붙인 이름이고 실제로 이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겹집이라고 합니다. 이 구멍으로 집안에서 쇠죽을 끓이고 밥을 할 때 나오는 연기와 수증기, 악취 등이 빠져나갑니다. 아울러 이것들이 내부를 돌아 나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난방효과도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집은 태백산맥 일대에 분포되어 있고 특히 안동, 영양, 청송, 영덕, 울진, 봉화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일종의 겹집입니다. 이 집은 북부산간형 겹집으로 강원도 지역과 안동을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에 분포하는데 안동 이남으로는 이런 집이 없습니다. 이 집은 폐쇠형 가옥으로 대문만 닫으면 외적의 침입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혀도 집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평면은 겹집의 특색에 따라 전자형(田字形)으로 배치하였고 대부분 초가지붕이나 간혹 기와로 된 경우도 있습니다. 겹집 : 대들보 아래 방을 두 줄로 배치한 유형, 대개 전(田)자형으로 겨울이 길고 추운 지방과 산간 지역에 분포.
박분섭(朴分燮) 까치구멍집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집은 안동시 와룡면 가류리에 살던 박분섭(朴分燮)씨의 농가로 "까치구멍집" 이라 합니다. 건축연대는 미상이며 1976년에 안동다목적 댐이 건설되면서 현 위치로 이건했습니다. 이집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홉칸집으로 이 고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세칸 겹집에 비해 규모가 크며 사랑방과 부속시설이 딴채로 분리된 것이 특징입니다. 중앙 앞쪽에 봉당이 있고 그 뒤쪽에 마루가 놓여 있으며 마루 우측에 부엌과 안방, 좌측에 외양간과 상방이 있습니다. 부엌과 외양간 위에는 다락이 설치되어있는데 부엌 위의 다락은 안방에서 다양한 공간으로 이용되고, 외양간 위의 다락은 주로 농기구를 보관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집에는 부엌과 봉당 사이 벽에 소나무 광솔로 불을 밝혔던 꼬끌이 있고, 불씨를 보관했던 화티도 있었습니다. 봉당 : 온돌이나 마루 시설이 없이 맨흙바닥으로 된 내부 공간을 말하며 대청 앞이나 방 앞 길다란 부분을 봉당이라 함. 꼬끌 : 불을 밝히는 일종의 등잔 화티(화투) : 부엌(정지) 옆에 만들어 놓은 불씨 보관 장소.
최대의 난 코~스 까치고개
까치고개 넘어 왕의나라 트랙터에 문화를 싣고 낭만을 싣고...... 까치고개 : 까치구멍집이 좌측에 있다고해서 붙여본 이름.
이춘백 초가(李春伯氏 草家)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가옥은 이춘백씨 일가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살던 농가(農家)로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에 이곳으로 이건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지은 가옥으로 4칸 겹집 형태이며 내부 구조는 서민 생활에 편리하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이 가옥은 네모난 대지에 본채와 변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초가이며 사랑방, 건넌방, 마루, 봉당, 안방, 부엌,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물의 평면은 봉당이 있는 마루 중심형 겹집의 기본형에 사랑방을 건물 내에 수용함으로써 옆으로 늘어났을뿐 아니라 부엌공간을 확장하고 광을 부엌 앞에 달아냄으로써 "ㄱ" 자 평면이 되었습니다.
이춘백 초가(李春伯氏 草家) - 환기구멍이 있는 측면 모습 박명실 초가(朴明實氏 草家)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집은 박명실씨 일가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살던 집으로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에 이곳으로 이건 하였습니다. 건축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세기경의 건물로 보입니다. 이집은 "一" 자 형의 본채와 사랑채 그리고 헛간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채는 마루방이 있는 홑집계열의 집으로 부엌, 안방, 마루방, 건넌방 순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안동지역에는 홑집과 겹집이 함께 나타나는데, 마루가 수용된 홑집의 경우에는 방한을 위해 이처럼 마루앞에 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사랑채는 사랑방, 부엌, 방앗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헛간은 2칸 인데 돌담으로 벽을 만들고 변소와 헛간을 두었습니다.. 홑집 : 대들보 아래에 방이 한 줄로 배치된 가옥을 홑집이라고 함. 홑집의 대표적인 유형은 초가 삼간이라 부르던 일자형(一字型)으로 남부 지방에 널리 분포.
박명실 초가의 마루방 권백종 정효각(權伯宗 旌孝閣)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비는 1345(고려 충목왕 원년)년에 정려되어 1761(영조 37)년에 건립하였으나 그 후 4차례 이건하여 현재 안동민속박물관에 이건되어 있습니다. 효자 권백종의 효성은 안동지방의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선생의 장자 권전(權專, 한성부사 증영의정 화산부원군)은 문종비(현덕왕후 권씨-단종의 모)의 부친으로 단종의 외조부이고 권백종은 단종의 외증조부이다. 권전의 아들 권자신이 단종의 복위운동에 가담하여 멸문지화를 당하여 효성관계 자료가 없으며 다만 효자 가선대부검교한성부윤증중추원부사권백종지여 (孝子 嘉善大夫檢校漢城府尹贈中樞院副使權伯宗之閭)라고 쓰인 효자비 후면 비문에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모친이 돌아가신 후 여막살이 3년 동안에 한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고 지성껏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효자 가선대부검교한성부윤증중추원부사권백종지여 (孝子 嘉善大夫檢校漢城府尹贈中樞院副使權伯宗之閭) )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2품 벼슬 검교[檢校] : 해당하는 벼슬의 정원 외에 임시로 증원할 때나 실제 사무를 보지 않고 이름만 가지고 있게 할 때, 그 벼슬 이름 앞에 붙여 이르던 말. 한성부윤(漢城府尹) : 한성부윤 正二品으로 .(현 서울시장) 증 중추원부사(贈 中樞院副使):조선 전기에, 중추원에 속한 종이품 벼슬로 증직.
돌담집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건물은 최점득씨의 가옥으로 영천군 신령읍 완산리에 있던 것을 1977년에 이건한 것인데, 돌로 담을 쌓았다 하여 돌담집이라 부릅니다. 이 건물은 본채와 헛간채로 구성되어 배치는 "ㄱ" 자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채는 "一" 자형의 홑집으로 크기는 정면 4칸,측면 1칸입니다. 평면의 구성은 좌로부터 헛간, 방, 방, 부엌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헛간채는 2칸으로 전면에는 벽체를 두지 않고 측면과 배면만 돌로 쌓고 그 사이는 진흙으로 메운 죽담으로 벽체를 형성하고 변소 옆에 붙여 놓았습니다.. 죽담 : 막돌에 흙을 섞어서 쌓은 돌담.
돌담집 돌담집의 돌담 이원모 와가(李源模 瓦家)
경북 안동시 성곡동 이 건물은 이원모씨의 일가가 살던 집으로 건축연대는 미상이나 19세기 이후에 지은 건물로 보입니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6년 안동시 예안면 부포1리에서 이곳으로 이건 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크게 정침(正寢)과 고방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배치는 대지 전면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침이 있고 그 우측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고방채가 위치하며, 정침의 우측 뒤편에 단칸의 사당이 높은 대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침의 전체 평면은 안채와 사랑채가 "ㄱ" 자와 "ㄴ" 자로 연결되어 튼 "ㅁ" 자를 이루고 있으며,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 안채부분이 앞의 사랑채보다 높게 위치하여 안채의 용마루선이 사랑채보다 높은 안동지역 "ㅁ" 자형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사랑채[舍廊채] :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집채. 정침(正寢) : 1.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 2.사람이 거처하지 않고 주로 일을 보는 몸채의 방.
이원모 와가 - 재래식 뒷간
양반집 뒤간을 초가지붕으로 만든 이유 - 비록 성공(입신양명 立身揚名)을 했을지라도 약간의 부족함을 남겨놓아서 후손들이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길 바라는......, 선조들의 후손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있다 합니다.
이천서씨 열녀비(利川徐氏烈女碑) - 이원모 와가 좌측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천서씨 열녀비는 1832(순조 32)년에 건립되었고 경상도 관찰사 박기수(朴岐壽)가 이천서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찬(撰)하였으며 안동시 율세동 485번지에 소재하던 것을 1983년 8월 29일에 현 위치로 이건했습니다. 향리인 김창경(金昌慶)은 곤궁(困窮)한 가운데 이천서씨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집안 사정도 넉넉지 못하고 시부모는 불구였지만 서씨는 아무 불평 없이 남편과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리고 착한 며느리의 노력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서씨가 시집온 지 4년 만에 남편이 까닭 없는 병으로 갑자기 죽자 행복도 잠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서씨는 앞일을 생각하니 눈물과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불구인 시부모가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니 기운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불구인 시부모의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 생계를 꾸려가는 일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동네의 방아품과 빨래품으로 식량을 구해 오기도 하고, 산에 가서 땔감을 장만하여 시장에 팔기도 하는 등 워낙 부지런하여 굶주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 뿐인 아들을 잃고 난 시부모는 홧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서씨는 시부모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하여 좋다는 약초는 모두 케어 다려드리고 품삯으로 약을 지어 정성껏 다려 드렸으나 마음에 얻은 병이라 병은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지극 정성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는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씨는 즉시 목숨을 끊어서 불효를 사죄하려 했으나 자기가 죽으면 시부모의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정중하게 장례를 마쳤습니다. 이제 자기가 남아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 서씨는 남편과 시부모의 뒤를 따르기 위해 단식 끝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서씨의 효성에 감복하여 고이 장사지내고 그 행적을 관아에 알려 열녀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관찰사[觀察使] : 조선시대의 지방장관.종2품의 문관직.(현 도지사) 향리(鄕里) :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 속해 있던 하급 관리. 지방 행정 단위에 있는 6방의 사무를 분장하였으며, 향역(鄕役)이라 하여 세습적으로 그 의무를 맡게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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