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에게 길을 묻다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
허꺼비
2012. 9. 13. 22:14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60호(1974.12.10 지정)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269-10
이 탑은 신라 애장왕(800~809년 제40대왕)때 창건된 동방사 경내에 있었던 고려초기의 석탑으로 높이는 10.4m 이다.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리고 이 석탑만 남아 있다. 상륜부에는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가 남아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원래 9층이었다고 전해진다.
1층 몸돌에 작은 감실이 있고...
근데 어찌 사진이 조금 삐딱하다 착시현상인가? 아니면 사진을 잘못 찍었는지?
문비형(門扉形)과 감실(龕室)
1층 탑신의 문비형(門扉形)과 작은 감실(龕室)의 모습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성주의 지형이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이라는데? 동남으로 성산, 서는 풍두산, 북으로는 다람쥐재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천은 성주를 돌아 동쪽으로 빠지고 있어 성주의 지기(地氣)가 냇물과 같이 빠지는 것을 막고 성주땅의 기운을 보호하기 위한 비보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탑을 일명 ‘지기탑(地氣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꽃무뉘와 구멍
1층, 2층, 3층 옥개석 4귀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층의 연꽃무뉘
1층의 연꽃무뉘만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기단부
여러 장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3단의 지대석(地臺石)위에 단층기단과 칠층탑신을 차례로 올려놓았다.
지대석의 2·3단은 3매의 장대석으로 쌓았는데, 상층에는 2단의 받침을 조출하여 기단(基壇)을 받고 있다. 이처럼 지대석을 3층으로 구성한 것은 칠층석탑을 받치기 위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탑은 이천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1934년(갑술년)대홍수때 물줄기의 흐름이 바뀌어 탑과 냇바닥과는 1㎞의 거리로 멀어졌고, 동방사의 절터는 논·밭이 되었다. 사진: 2012.9.12 수요일
08.12.22. 09:40 9층이라는 설도 있지만, 현재 남아있는것은 7층입니다. 동네 어른들말을 빌리자면 일제강점기때 어떤 스님이 탑위에 올라가 뭘~~훔쳐갈려다가 동네사람들과 일본 순사에게 걸려 미수에 거친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스님은 얼마나 간이 큰지 일본 순사가 아무리 내려오라고 해도 내려오지 않고 있다가 동네 사람들이 던진 돌을 맞고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도망을 잽싸게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반위에 있었던 복발은 성주향교밑 어디 논둑에 쳐박혀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하시던군요. 그나저나 제가 현재 동방사지 7층석탑의 문화재지킴이를 하고 있는데 언제 저의 허락도 없이 다녀갔었나요. ㅋ 신고 (모 카페의 댓글을 퍼 왔습니다)